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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성경공부 올바른 성경공부를 위해서는 문자적인 성경해석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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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48회 작성일19-11-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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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챠드 W. 디한/여성모

 

 

때때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 성경을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자신들이 확신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있는 어떤 구절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되는 경우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주장하는 바가 받아들여 지지 않을 때에 그들은 "그렇다면 성경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누가 과연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말하며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육성으로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자기의 주관이나 확신을 근거로 하여 억측으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기록된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물론,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식하에 중요하고 믿을만하고 오류가 전혀 없는 최고로 권위가 있는 책으로써 읽지 않는다면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판독할 수 있는 모호한 것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천국 고유의 언어로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같은 동 시대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의 각 책들을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성경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는 반드시 인정된 문법과 논리의 법칙에 더하여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이 사실은 이제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자연스럽게 문자적인 해석으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1. 문자적인 해석의 정의

 

문자적인 해석은 성경공부의 근본적인 원리이며 그 자체의 문맥이나 표현이 문자적 의미와 다른 것을 암시하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절에서 성경이 말하는 정확한 문자적인 의미를 취하도록 유지시켜 줍니다.

 

어떤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로도 잘 이해되고 있다면, 그것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고 적절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M R 디한은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 과 어린 아이, 암소와 곰, 사자와 독사와 어린 아이와 사람의 본성이 완전하게 바뀌는 때를 묘사한 이사야 11:6-9절을 이 원리에 대한 훌륭한 예로 들었습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The wolf also shall dwell with the lamb, and the leopard shall lie down with the kid; and the calf and the young lion and the fatling together; and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And the cow and the bear shall feed; their young ones shall lie down together: and the lion shall eat straw like the ox.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And the sucking child shall play on the hole of the asp, and the weaned child shall put his hand on the cockatrice' den.

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They shall not hurt nor destroy i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M R 디한의 주석은 이 문맥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다스리시며 주님의 왕국을 세우실 때를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영해하는 사람들은 이리와, 어린 양 그리고 사자가 서로 별개의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은 때가 되면 기독교계의 교파나 교단을 나타내는 이리가 다른 종교의 무리나 교파들과 평화하게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러한 영해의 방법을 사용해서 이 구절을 해석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리는 미국으로, 사자는 영국으로, 곰은 러시아로, 그리고 이 구절은 이 세 나라가 결국 평화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고 우리 나름대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제각각 성경을 그럴듯하게 자기 느낌대로 영해해 낸다면 성경의 가르침이 얼마나 혼란스러울 것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한 구절에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영해의 예만으로도 성경을 영해하는 일이 얼마나 엉뚱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왕국이 세워지고, 짐승조차도 서로 평화하게 되며, 유순해지고, 육식성이 없어지며, 함께 안전하게 거하게 되는 때라고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평이하며 또 얼마나 쉽습니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적인 표현이나 성경의 인접한 문맥들을 잘 살펴보면 어떤 구절들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상식적으로도 문맥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알아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3:14에서(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이 없고 난 하주에 막 12:40이나 눅20:47에서 참조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For ye devour widow's houses)"라고 외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집에 사용된 재목들과 못 등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것이 주 예수님께서 과부의 허점을 이용하여 재정적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금방 쉽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경을 해석할 때에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2. 문자적인 해석과 예언

 

대부분의 정통적인 성경 학도들은 문자적인 해석의 원리를 받아들이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예언적인 부분을 다룰 때는 슬프게도 그 원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민족이기 때문에 많은 예언들이 결코 성취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이 팔레스틴 땅으로 다시 회복된다고 하는 예언들은 반드시 영해되어져서 오늘 날 이스라엘의 영적 후예인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게 된다면 성경의 위대한 예언적인 구절들은 전혀 무의미하게 되어버립니다. 여기 이 예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그 예언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기 원한다면 반드시 문자적인 해석을 해야 하며, 두 가지 단순한 규칙인 다음에 말하는 "간격 이론""이중 참조의 법칙"을 취하여 잘 적용할 수 있다면 실제적으로 만나게 될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간격 이론"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때때로 둘 또는 그 이상의 예언적인 사건들이 많은 시간적 간격에 의해 분리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견은 어떤 사람이 먼 거리에서 두 개의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 산봉우리들은 함께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에 있는 계곡의 넓이에 대해 아무 표시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그 사이에 들어있는 교회시대에 대한 부분을 빼놓은 채 예언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사랑받는 의사인 누가는 눅 4:17-20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읽는 것을 묘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첫째 절을 읽으시고 둘째 절을 부분적으로 읽으시는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문장에서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라는 말씀에 미치기 전에 멈추셨습니다. 이 신원의 날이라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데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이의 기간을 명백하게 보지 못한 것입니다.

 

4:17-20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And there was delivered unto him the book of the prophet Esaias. And when he had opened the book, he found the place where it was written,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th anointed me to preach the gospel to the poor; he hath sent me to heal the brokenhearted, to preach deliverance to the captives, and recovering of sight to the blind, to set at liberty them that are bruise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To preach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And he closed the book, and he gave it again to the minister, and sat down. And the eyes of all them that were in the synagogue were fastened on him.

 

61:1-2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The Spirit of the Lord GOD is upon me; because the LORD hath anointed me to preach good tidings unto the meek; he hath sent me to bind up the brokenhearted,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the opening of the prison to them that are bound;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and the day of vengeance of our God; to comfort all that mourn;

 

"이중 참조의 법칙""간격 이론"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때때로 한 사건을 예언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두 사건을 예언한 것이며, 첫 번째로는 부분적으로 성취되며 그 후의 시대에 예언의 완전한 실현을 나타내는 것이 다릅니다. 그 한 예를 사도행전 2장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베드로는 약 800년 전에 예언되었던 오순절 날의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해 외쳤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2;16-20)

 

우리는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것 때문에 이 구약 예언의 모든 부분이 오순절 날에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의 부으심은 요엘의 예언의 부분적인 성취이며,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전환과 함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날 놀라운 표적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경의 예언들을 읽을 때 이러한 이미 이루어진 것과 아직 미래적인 것들 사이에 있는 관점들을 잘 분간해서 읽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위에서 언급한 "간격 이론""이중 참조의 법칙"을 잘 적용하여 성경을 읽는다면 당신은 성경의 예언적인 구절들을 전보다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문자적인 해석과 상징적 표현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규칙이 성경에 있는 모든 상징적인 표현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거부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실제적인 곤란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 2장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였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왕은 그 꿈에 대해 잊었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왕이 본 것과 그 환상의 의미를 왕에게 말해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동이며 철로 된 다리를 갖고 있는 거대한 우상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거대하고 둥근 돌이 굴러와서 그 우상을 부숴뜨릴 것과, 더 나아가 그 우상의 금, , , 철의 부분들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의 연속된 네 제국을 의미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이 느부갓네살의 우상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역사의 실제적인 네 민족을 묘사해 주는 훌륭한 그림들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다니엘 2장에 있는 상징들에 대하여 문자적 해석을 우선시하는 우리들이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영해를 우선시 하는 사람들이 이사야 11장에 있는 이리, 사자 그리고 곰이 실제적인 세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영해한 것하고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느냐 하고 말하면서, 그 둘 사이에 아무른 차이가 없다고 하여 우리가 채택하는 다니엘서 2장의 상징적 해석에 대하여 반대할 수 있는 논리를 내 세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표현이나 성경의 인접한 문맥들의 그 당면한 상황에 대한 표현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구절들이 상징이나 그림으로 주어진 것을 알아 볼 수 있다고 앞에서 말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11장의 단어들은 의로 통치하고 평강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천년왕국 시대에 짐승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을 정도로 변화될 것을 의미한다는 문자적인 해석을 할 때 훌륭한 의미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그의 꿈에서 본 우상과 같은 것은 어떤 것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각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문자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같은 장에 그 우상이 상징하고 있는 바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하는 사실과 또한 이 상징적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도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진리를 전달해 주는 수단이 됩입니다. 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선한 목자" 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문자적인 목자나 어린 양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계시록 19장에서 요한이 보았던 백마를 타시고 뒤에 천군을 거느리신 주님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상적으로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분명하게 언어와 상징의 표현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문자적으로 백마를 타시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전능하신 정복자로서 그를 따르는 영화롭게 된 무리를 이끄시고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진리의 실제적인 면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만든 어떠한 기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주님께서는 말을 타고 우주를 지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짐승은 우주를 지나는데 알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을 인정하는 것과 성경을 영해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아무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징적인 표현에 대한 지식은 문법과 논리의 규칙을 받아들인 결과로 생기는 것이지만 성경의 영해는 명백한 의미를 간과하거나 지나치게 되고 그 대신에 감동하심을 입은 기록자들이 결코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4. 문자적인 해석과 모형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은 모형을 인정하면서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잘 공존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규례, 의식과 같은 "모형"은 신약에서 완전히 드러난 진리를 잘 그려주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입니다. 모형은 드러난 진리의 문자적인 의미에 덧붙여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건들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요나의 경험이 주님 자신의 장사됨과 부활에 대한 그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40). 주님은 또한 민수기 21장의 놋뱀이 주님의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으심을 예시하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3:14). 서신서에서는 구약시대의 희생과 제물들이 주 예수님의 갈보리에서의 죽으심을 미리 나타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었던 사건을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라고 말할 때 그가 사용한 단어는 "모형""그림"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구약은 신약의 진리를 예시해 주는 요인들을 담고 있는 아주 넓은 창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련한 성경교사들은 이러한 모형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간 흥미를 주어 신약의 많은 진리들을 설명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모형자체가 갖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간과하거나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하며 모형이 진리들을 설명하는 훌륭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그의 상상력에 이끌리거나 이러한 모형에서 어떠한 교리를 세우려고 노력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진리에 대한 분명한 선언 위에 그의 믿음의 기초를 놓고 구약의 예화와 예표들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리들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특성에 대한 부가적인 증거까지 제시해 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직한 확신으로 반복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문자적인 해석의 원리를 수용한다면 성경의 의미에 대한 대부분의 혼란이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언은 위로와 교훈을, 상징은 감동과 깊은 의미를, 모형은 영적인 부요와 영적인 강인함을 줄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도 잘 이해된다면, 그것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는 격언을 꼭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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