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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마틴 루터의 구원간증과 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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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748회 작성일19-11-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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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구원 간증과 칭의

 

 

1503년 부활절 방학기간에 마틴 루터라는 학생이 에어푸르트 대학에서 모처럼 휴가를 얻어 당시의 관습에 따라 허리에 단검을 차고 고향집으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던 루터는 그만 넘어지게 되었고 칼집에서 튀어나온 칼에 동맥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붙잡고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지만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상처를 감싸 쥐고 간신히 일어나긴 하였지만 너무나 출혈이 심한 나머지 기진맥진해진 루터는 그만 다시 땅에 쓰러졌습니다. 거의 죽을 지경에 다다랐을 때 그 때 루터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시 혼절했습니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의사 한 사람이 그를 발견하였고, 그의 도움으로 루터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소생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이 또는 자기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연약해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505년 여름, 에어푸르트 대학에서 방학을 맞은 루터는 알렉시스 라고 하는 친구와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만스펠트로 가고 있었습니다. 만스펠트 근처의 산자락을 지나갈 무렵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 쳤고 그 때 내리치는 번개를 맞고 그의 친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놀란 루터는 그 자리에 엎드려져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과 심판 그리고 내세에 대한 공포가 엎드려져 있는 루터를 순식간에 휘감았습니다. 루터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만약 주께서 이 위험에서 나를 구원해 주시오면 이제 온전히 하나님께 제 자신을 바치겠나이다."

 

친구의 죽음 후 루터는 비통하고 두려운 마음에 며칠간 고통스럽고 슬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루터는 그 때 자신의 유한하고 무능력한 처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결하지 못한 마음으로 두려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루터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결치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제 나는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의 지엄하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고,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살아날 수 없는 죄인임을 무겁게 느끼며 근심에 빠졌습니다. "죄인인 내가 지금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루터는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길은 수도자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자가 되어 구원의 길을 찾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메아 쿨파(mea culpa); 메아 쿨파(mea culpa) -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젊은 신부가 어거스틴파 은둔 수도원 원장 앞에서 마루 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하고 이 젊은 신부는 애걸하고 있었습니다. “빈곤과 동정과 순종이 항상 너에게 따라야 한다.” 수도원장은 억양을 한껏 넣어가며 말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수도사가 되기를 서원한 후 그가 22살 되던 해인 1505717일 에르프르트의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어거스틴파 은둔 수도원(the black cloister of the Augustinian hermits)에 들어갔습니다.

 

독일 농부의 아들인 젊은 마르틴 루터는 엄숙하게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직 속옷에 검정 가운을 입고 짧은 고깔 달린 웃옷을 걸치고 검정 벨트를 차고서,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기 위해 긴 수도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수도원을 일명 검은 수도원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검정 옷을 입은 수도사들이 엄격히 통제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받기 위한 수도의 길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애썼는지는 그가 한 다음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일 수도승이 수도원의 규칙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갈수 있다면 그 일로 나는 천국에 갔을 것입니다. ..... 내가 만일 그 상황에서 좀 더 계속 밤을 새우고 더 기도하며 더 읽고 더 노동했다면 나는 결국 스스로 그 곳에서 순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 간지 2년도 채 못 되어 신부에 서품(15073)되고 첫 번째 미사를 집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그는 엄격한 수도원의 모든 규정들을 다 만족시켰던 것입니다. 그의 수도원 훈련이란 오랜 기간 동안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으며, 또한 수면도 취하지 않으면서 뼈를 깎는 추위 속에서 옷을 입거나 담요를 뒤집어쓰지도 않은 채-게다가 자기 몸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수행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로 요구되기도 하는그러한 훈련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단순히 기도나 금식, 궁핍, 금욕의 흉내만 내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그것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루터는 만년에 병 때문에 매우 고생을 하였는데, 이것도 아마 이 당시에 자신의 육체적 요구를 너무나 엄격하게 거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을 거의 완벽하게 이행하여 그렇게도 빨리 정식 사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영적으로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양심은 지속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가슴 아파하며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루터는 이와 같은 고해성사를 통해 인간이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사랑과 자기이익에 기초한 지극히 한정되고 부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 . .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22:37-39)는 말씀은 결단코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지켜질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녀들을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자녀의 성공을 통해 자기만족이나 야망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 안에는 결국 자녀에 대한 강한 소유욕이 숨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자신 안에도 이와 동일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부분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예리하게 간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흠도 점도 없는 완전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자신이 스스로는 그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좌절하고 또 절망하였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절망을 바로 옆에서 주의 깊게 지켜보았던 어거스틴회 수도원장이자 비텐베르크 주교인 요하네스 폰 슈타우피츠(Johannes von Staupitz)는 끊임없이 고통 하는 루터에게 신학공부를 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루터의 관심을 고행이나 금욕에서부터 성경으로 돌리도록 도와주려고 하였습니다. 1508년 어느 날 루터는 조그마한 탑 속에 앉아 로마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서 117절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최초의 섬광이 비쳐왔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그는 마음속으로 그 섬광의 말씀을 자꾸 뇌이고 또 뇌이고 있었습니다. 과연 믿음만으로 의인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말인가? 그는 진심으로 이 문제를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루터는 계속해서 성경에로 심취하게 되었고, 1509년 성경학사, 1512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신학공부 도중인 151011월부터 15114월까지 그는 로마를 방문하였습니다. 이 방문목적은 그가 소속한 에르푸르트 수도원이 비텐베르크의 슈타우피츠 주교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 수도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로마 교황청에 개혁파를 위해 청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여튼 루터는 로마로 가게 되었다는 그 소식을 듣자 그의 가슴은 마구 뛰었습니다. 확실히 그 거룩한 도시에 가면 그는 그 곳에서는 마음속으로 그토록 초조하게 바라던 영적인 평안을 마침내 찾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그 거룩한 도시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얼굴을 파묻고 울며 소리쳤습니다. “거룩한 로마 만세!”

 

그는 면죄를 받아 보려고 하는 욕심으로 그 도시에 있는 성소라고 하는 성소는 모두 다 찾아 갔습니다. 그는 유명한 산타샌토룸에 왔습니다. 그 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빌라도의 심판석까지 밟고 올라 가셨다고 알려진 28개의 높다란 계단이 있었습니다. 루터는 교황 레오 4세가 어떤 순례자든지 속죄(贖罪)경을 외우면서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 9년 동안의 면죄를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닳아빠진 계단을 기어오르면서 기도문을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기도문 사이사이로 그는 마음에 떠오르는 죄를 하나하나 자백했습니다. 갑자기 그는 탑 속에서 읽은 적이 있던 로마서에 있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진리는 그의 내면의 자아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빛은 밝아 왔지만 영적인 어두움은 여전히 그의 영혼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독일로 돌아오자 루터는 성경말씀을 좀 더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는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몇 시간이고 묵상했습니다.

 

한편 루터는 학문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들이키듯이 당시의 교회 박사들의 책들을 탐독해 나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그는 말년에도 그 책들을 줄줄 외우면서 인용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엄숙한 의식으로 위텐베르그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박사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아직 빛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박사가 된 루터는 스승의 자리였던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경신학 교수직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시편강의(1513-15), 로마서 강의(1515-16), 갈라디아서 강의(1516-17), 히브리서 강의(1517-18), 그리고 다시 시편 강의(1518-21)를 하였습니다.

 

그는 시편에 대해서 강의한 다음 로마서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는 다시 한번 새롭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와 씨름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시편에 이어 로마서를 강의를 하는 동안 루터에게 새로운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그 새로운 빛은 루터가 그렇게도 고민하던 구원을 이루는 그 빛이었습니다.

 

그는 그 때만 하드라도 아직 하나님의 의라는 문구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는 데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모든 박사들의 전통과 관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란 표현을 철학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의 의를 통하여 하나님이 의롭게 되시고 죄인 곧 불의한 자들을 능동적으로 벌하시는 의로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벌하시는 하나님의 의라는 그 말을 혐오했습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 곧 벌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의 하나님을 혐오 했습니다. 그는 능동적으로 벌하는 일만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매우 불쾌했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 때문에 그는 은밀히 하나님을 모독하기까지 하며 그는 실제로 투덜거리면서 이렇게 까지 말 하였습니다: 원죄로 영원히 저주받은 비참한 죄인들이 십계명의 율법을 통한 온갖 고통으로 압박당하게 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복음을 통해서조차 그의 의로 고통 위에 고통을 더하시고 또 거기에다 복음을 통한 진노로 우리를 또 위협하시기까지 과연 하셔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의 문맥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까지 밤낮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나는 의인이 믿음을 뜻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그 의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원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을 통하여 나타났다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의하여, 은혜로 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동적인 의를 통하여 은총과 자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그는 진정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낙원으로 향한 모든 문들이 활짝 열렸고, 그는 그 때 낙원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에게 말씀의 빛이 비쳐 쏟아져 들어와 그의 어두운 마음을 구석구석 밝혀 주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하심을 선포하시는 수단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내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이제 나에게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미워하는 대신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루터는 탄생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설교로 전 유럽에 불을 붙인 루터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루터에 의하면 "오직 믿음과 은혜"라는 말의 뜻은 사람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중세교회의 성례전에 기초한 죄사함, 행위구원, 면죄부에 의한 죄의 경감이나 구원, 사제를 통한 죄의 고백을 하기 위한 고백성사와 같은 무겁고 부담스러운 과정을 단숨에 제거해 버린 인류역사의 대 자유헌장과 같은 것입니다. "오직 믿음과 은혜"의 헌장을 선포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두고두고 기억되어지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조건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믿는 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코 율법, 할례, 희생제사,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속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3:24b).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드리지 않고, 단지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므로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이 의()는 믿음의 의() 이지만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수여되는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의()란 지금까지 지었던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시지 않으심을 말하는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인간을 "죄인이자 의인이라" 부르며 그리스도를 통해 의()가 전가(inputatjon, not impartation) 되었다고 합니다. 의의 전가는 다른 말로 법정 칭의(稱義)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법정에서 실제로 죄가 있는 자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을 내릴 때 죄인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정 칭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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