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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지 회개-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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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185회 작성일19-11-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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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1.의미

회개와 관련하여 구약성경에서 나함슈브라고 하는 두 개의 단어가 일반적으로 회개하다혹은 이와 비슷한 동의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나함'마음을 뉘우치다', ‘마음을 바꾸다의 뜻이고 과 히브리어 슈브'돌이키다’, ‘돌아오다의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회개에 관련된 이 두 개의 단어가 합성되면 신약에서 말하는 구원받는 회개를 말하는 회개에 합당한 완전한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마음으로부터 뉘우치고 그 마음을 바꾸어 마음이 변화된 증거를 가지고 죄로부터 구주께로 돌이켜서 구주께로 돌아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주님을 믿으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뉘우쳐서 하나님께 돌아오든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마음이 뉘우쳐졌든, 우리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로 완전한 전향이 일어납니다. 이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뢰하고 믿게 되고 동시에 하나님 편에서는 이때에 우리의 믿음의 진정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을 허락하시고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의 후사인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하여 인을 치십니다.

 

2. 구약에서 사용한 용례1: 나함

나함은 주로 구약에서 쓰였으며 사람에게는 자주 쓰이지 않았지만 출 13:17; 42:6; 8:6; 31:19에서는 사람에게 사용되었고 보통은 하나님에 대해서 쓰였습니다. 1317절 에서는 사람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을)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3:17b). 42:6절에서도 욥에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6) 그리고 렘 8:6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용하였습니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8:6) 31:19절에서 예레미야에게 사용하였습니다. “(여호와께로)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Surely after that I was turned, I repented; and after that I was instructed, I smote upon my thigh: I was ashamed, yea,

even confounded, because I did bear the reproach of my youth.”(31:19)

 

13:17절에서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변화되어)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Then it came to pass, when Pharaoh had let the people go, that God did not lead them by way of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lthough that was near; for God said, "Lest perhaps the people change their minds when they see war,

and return to Egypt."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Therefore I abhor(혐오하다 몹시 싫어하다)

myself, And repent in dust and ashes."

(죄를 혐오하여. <나의 죄 성향이 추구하던 쾌락과 탐심 등에서 치명적인 불이익이 있다고 하드라도> 하나님 편에 서서, 단호하게 나의 죄를 정죄하고, 통회하며 자복할 때, 변화된 우리의 마음의 진정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8: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I listened and heard, But they do not speak aright. No man

repented of his wickedness, Saying, 'What have I done?' Everyone turned to his own course, As the horse rushes

into the battle.

31:19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Surely, after my turning, I repented; And after I was instructed, I struck myself on the thigh; I

was ashamed, yes, even humiliated, Because I bore the reproach of my youth.'

나함이 하나님에 대해서 쓰인 구절들에서는, 하나님이 내리시기로 계획하신 재앙을 유감스럽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마음을 바꾸신다라는 식으로 뜻을 돌이키시는하나님을 나타낼 때 종종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을 사람에게 적용을 하면 그 마음을 뉘우치고 그 자신의 마음을 바꾼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구원 받는 믿음에 필요한 회개의 의미가 여기에서 유래 되었거나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직접 열고 닫는 하나님과의 이런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강력한 표현은, 이스라엘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그들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개인적인 관계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와 믿음과 구원이 이와 같이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연장선상에서, 하나님의 인생을 향한 구속사적 경륜 상에 있어서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은 놀라운 경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마음을 바꾸신다또는 그 자신의 뜻을 돌이키신다라고 하는 이러한 표현은 물론 하나님의 마음이 변덕스럽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그와 같은 뜻으로 오해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멀어져 있다가, 마침내 인간이 늦게라도 결국 뉘우쳐 그 마음을 바꾸었을 때에는, 긍휼이 풍성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마음도 바꾸시므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또 이와 같은 실패와 회복을 반복함으로서 계속적으로 그 관계가 변화되어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특별히 사람들이 고의로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고 또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멀어질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한 뜻에서 그 뜻을 돌이켜 더 큰 재앙을 내림으로, 사람들은 그 때는 하나님의 재앙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6:6이하 ; 삼상 15:11, 35; 삼하 24:16; 18:10)

 

6:6b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the LORD was sorry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He was grieved in His heart.

30: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That then the LORD thy God will turn thy captivity, and have compassion upon

thee, and will return and gather thee from all the nations, whither the LORD thy God hath scattered thee.

삼상 15:11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I greatly regret that I have set up Saul as king, for he

has turned back from following Me, and has not performed My commandments." And it grieved Samuel, and he cried

out to the LORD all night.

삼상 15:35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And Samuel went no more to see Saul until the day of his death.

Nevertheless Samuel mourned for Saul, and the LORD regretted that He had made Saul king over Israel.

삼하 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over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destruction,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destroyi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restrain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

18:10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if it does evil in My sight so that it does not obey My voice, then I will relent concerning the good

with which I said I would benefit it.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라도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사람들은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재앙을 유감스럽게 여기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마음을 바꾸시어서’ ‘뜻을 돌이키시는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경험하는 것도 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18:8; 26:3,19; 3:9 이하; 그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중재자의 중요성은 출애굽기 32:12~14과 아모스 7:3,6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18: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if that nation against whom I have spoken turns from its evil, I will relent of the disaster that I thought to bring upon it.

26:3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Perhaps everyone will listen and turn from his evil way, that I may relent concerning the calamity which I purpose to

bring on them because of the evil of their doings.'

26:19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Did Hezekiah king of Judah and all Judah ever put him to death? Did he not fear the LORD and seek the LORD'S

favor? And the Lord relented concerning the doom which He had pronounced against them. But we are doing great

evil against ourselves."

3: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Who can tell if God will turn and relent, and turn away from His fierce anger, so that we may not perish?

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Then God saw their works, that they turned from their evil way; and God relented from

the disaster that He had said He would bring upon them, and He did not do it.

32:12~14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Why should the Egyptians speak, and say, 'He brought them out to harm them, to kill them in the mountains, and to

consume them from the face of the earth'? Turn from Your fierce wrath, and relent from this harm to Your people.

32: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Remember Abraham, Isaac, and Israel, Your servants, to whom You swore by Your own self, and said to them, 'I

will multiply your descendants as the stars of heaven; and all this land that I have spoken of I give to your descendants, and they shall inherit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So the LORD relented from the harm which He said He would do to His people.

7:3,6

7:3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The LORD repented for this: It shall not be, saith the LORD.

7: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The LORD repented for this: This also shall not be, saith the Lord GOD.

7:1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7:2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7: 4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7:5 이에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그러므로 공의의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고하다고 해도(23:19; 삼상 15:29; 110:4; 4:28; 24:14; 8:14)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 자신을 그들에게 신실하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으로 드러내십니다. 이때의 하나님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뜻을 돌이키시는하나님이십니다(32:14; 32“36; 2:18; 대상 21:15; 106:45; 135:14; 42:10; 2:13 이하; 4:2)

 

3. 구약에서 사용한 용례2: 슈브

슈브도 주로 구약에서 쓰였으며, 인간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또한 언약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의지하는 상태로 돌아오라(슈브)고 요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은 특히 바벨론 포로 생활 이전의 선지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됩니다. 아모스 4:6~11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내리시는 재앙은 악의적이거나 보복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회개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죄를 회개한 사람에게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친히 내린 재앙에 대하여 후회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감명을 주는 하나님의 회개 요청은 호세아 6:1~314:1~2에 나타납니다.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는 호소이며(3:5; 5:4; 7:10), 11:1~11은 특별히 강한 호소력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그 아들의 이름, 스알야습(‘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7:3; 10:21 이하와 30:15도 보라: 참조 19:22)에 표현한 소망과 예레미야의 호소들(3:1~4:4; 8:4~7; 14:1~22; 15:15~21)도 동일하게 감동적인데, 그들이 행한 예언 둘 다 에서 희망과 절망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6:10; 9:13; 13:23).

 

다른 강력한 표현들은 신명기 30:1~10; 열왕기상 8:33~40, 46~53; 역대하 7:14; 이사야 55:6~7; 에스겔 18:21~24, 30~32; 33:11~16; 요엘 2:12~14에 나타납니다. 특별히 사무엘상 7:3; 시편 78:34; 에스겔 14:6; 다니엘 9:3; 스가랴 1:3 이하; 말라기 3:7도 보도록 하세요. 국가적인 회개에 대한 고전적인 예는 요시야에 의해 인도된 회개입니다(왕하 22~23; 대하 34~35)(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Say unto them, As I live, saith the Lord GOD, I have no pleasure in the death of the wicked; but that the wicked

turn from his way and live: turn ye, turn ye from your evil ways; for why will ye die, O house of Israel?)

 

4.신약에서 사용한 용례: 메타노에오 와 멜타멜로마이

신약성경에서 회개하다로 번역된 단어들은 메타노에오멜타멜로마이입니다. 헬라어에서 그것들은 보통 후회하다, 자책감을 느끼다’, 또한 마음을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구약의 관점을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후회는 세리의 비유(18:13)에 나타나 있으며, 마태복음 21:29,32; 27:3과 누가복음 17:4(‘내가 회개하노라’)에도 잘 나타나 있고, 고린도후서 7:8~10에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의 회개라는 말의 사용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인 나함의 영향과 함께 슈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유감을 느끼거나 마음을 돌이킬(‘나함’) 뿐만 아니라, 회개의 증거로 기본적인 행동의 동기와 개인의 삶의 방향까지 전환(‘슈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메타노에오는 전환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때의 마음이 전환되는 회개는 당연히 회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회심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명백한 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의로운유대인들에게도 회개의 증거로세례를 받으라고 한 것도 회개의 증거가 기본적인 행동의 동기와 개인의 삶의 방향까지 전환(‘슈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세례는 삶의 구습에서 돌이켜서 자신을 오실 분의 긍휼에 의지하는 결단을 상징합니다(3:2,11; 1:4; 3:3,8; 13:24; 19:4).

 

예수의 회개 요청은 마가복음(1:15; 참조 6:12)이나 마태복음(4:17; 11:20 이하; 12:41)에서는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으나, 누가복음에서는 강조되어 있습니다(5:32; 10:13; 11:32; 13:3,5; 15:7,10; 16;30; 17:3 이하; 참조 24:47). 그러나 세 복음서 모두 다 다른 말씀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예수의 전체 사역이 요청하였던 회개의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돌이킴과 귀환으로서의 회개의 근본적인 성격이 탕자의 비유(15:11~2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회개의 절대성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 잘 나타납니다. 회개란 한 인간이 하나님께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에 복종하는 것입니다(18:13). 이전에 귀히 여기던 것들과 삶의 형태들로부터 돌이키는 것에 대해서는, 예수가 부자 청년(10:17~22)과 삭개오(19:8)를 만나는 장면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태복음 18:3에서 개심이란 어린아이같이 되어,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미숙한 것과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리가 바울에 의하여 정리되고 가르치기 전에, 회개의 요청(과 용서의 약속)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설교에 대한 누가 기록의 일반적인 특성입니다.(2:38; 3:19; 8:22; 17:30; 20:21; 26:20). 여기서는 메타노에오라는 단어에 돌이키다. 돌아오다라는 단어가 보충되어 쓰였습니다(3:19; 9:35; 11:21; 14:15; 15:19; 26:18,20; 28:27). 여기서 메타노에오는 주로(죄로부터) 돌이켜 (죄를)떠나는 것이며, 에피스트레포는 (최로부터)돌이켜 (하나님께로)돌아오는 것입니다.(특별히 사도행전 3:19; 26:20을 보라) 그러나 각각은 스스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11:18; 살전 1:9처럼)

 

사도행전5:3111:18을 보면,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인간의 책임이라고 우리말 번역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영어 원문으로는 무리 없이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사야 6:9~10은 인간이 돌이키는 데 실패한 것을 설명하는데 여러 번 인용됩니다(13:14 이하; 4:12; 12:40; 28:26 이하). 회개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우리는 이제 회개도, 믿음도 구원도 생명도 성령도 모두 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Him hath God exalted with his right hand to be a Prince and a Saviour, for to give repentance to Israel, and forgiveness of sins.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When they heard these things, they held their peace, and glorified God, saying, Then hath God also to the Gentiles granted repentance unto life.

히브리서 기자는 최초의 구원받는 회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6:1), 구원을 위한 두 번째 회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4~6; 12:17). 따라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 할 때 이때의 회개는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구원받기 위한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 된 교제를 회복하기위한 회개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7:9 이하; 12:21; 5:19 이하; 요일 1:5~2:2; 2:5,16,21 이하 3:3,19).

 

끝으로 신약성경에서의 회개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인 나함의 영향과 함께 슈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감을 느끼거나 마음을 돌이킬(‘나함’) 뿐만 아니라, 회개의 증거로 기본적인 행동의 동기와 개인의 삶의 방향까지 전환(‘슈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의 마음이 전환되는 회개는 당연히 회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구원 받는 믿음에는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시작한 그리스도인 곧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믿음에는 진정한 회개를 수반하며, 회개를 수반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뿐아니라 생명을 얻고 성령의 내주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 치심을 받은 자가 구원을 받은 자이며 이 구원이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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